본문 바로가기
Book

데이지의 인생

by 려워니 2011. 4. 7.


한 밤에 잠에서 깨어 빗소리를 들으며 책을 보는게 좋다.
봄 기운이 만연할때 불현듯 엉뚱한 계획 하나를 세워 보면 어떨까?
이를테면 자전거를 타고 경주까지 달려가서 선재 미술관 앞뜰에서 조각품을 끌어 안고 사진을 찍고 놀기.
아니면 배낭 하나를 메고 무작정 걸어서 동해 바다의 코스트 라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기.
가다가 보면 포항 시장까지 이르러 포항 시장 물회를 한 사발 먹을 수 있을지도 몰라.

봄에 어울리는 책.
책이 무슨 봄?
책에는 감정이 있다.
이쁜 책을 보면 마음이 예뻐지고, 무서운 책을 보면 사람이 무서워지고, 안 좋은 책을 보면 눈을 씻고 싶지만 눈을 씻어낼 수도 없고 마음만 괴로워진다.
그래서 마음이 황폐해지면 내가 소장하고 있는 이쁜 책 들을 끄집어 내어 그 구절들 속에 들어갔다가 나오곤 한다.
예를 들면 '어린 왕자'나 '아버지가 내게한 거짓말' 책상은 책상이다' '봉순이 언니' '중국인 거리' 그리고 '데이지의 인생' 같은 책들이 그런것 들이다.. 

책방 한 구석에서 작고 이쁜 책을 찾아내어 단숨에 읽어 버린책.
"우리 삶에 조금이라도 구원이 되어 준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문학"이라고 생각하는 '요시모토 바나나'-옳아요...
'키친'으로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이고,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 '나라 요시토모'의 그림은 이야기의 맛을 더해주고 있다.

사고 현장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소녀가 소꿉친구 달리아와의 우정을 통해 상처를 치유받고, 달리아의 죽음 까지도 성숙하게 받아 들인다는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림을 그리듯 써 내린듯...

꿈의 여운이 몸을 지배하고 있어 좀처럼 현실로 돌아올 수 없었다......

나는 자주 그 숲에서 아침을 보냈다.
햄버거를 사들고 가서 숲 속 벤치에서 아침으로 먹은 적도 있었다.
벤치는 늘 지저분했고 개미와  송충이도 많았지만, 나는 거기에 있는게 좋았다.
울창하게 자란 나뭇가지는 하늘을 가릴 만큼 겹겹이 무성하고, 바람이 불면 나뭇잎 사이로 비친 햇살이 벤치위에 어지러울 정도로 너울 거렸다.
그곳에서도 오전 시간 만큼은 완벽하게 고요했다.
언제나 풀과 나무 냄새가 났다.
책을 읽을 때도 나는 바깥 세계를 느꼈다.
재재거리는 드높은 새소리가 상쾌하게 들렸다.
펼친 책에 햇살이 비치면 종이 에서도 좋은 냄새가 났다.....
마음이 풍요로워진 기분이었다.
일을 끝내고 농밀하게 지내는 한밤의 시간과는 정반대인, 키우고 포용하고 뻗어 나가는 힘을 즐겼던 시간들도 떠올랐다.
아침 햇살을 받으면 몸이 정갈해지는 느낌이다. 

어디까지나 겸손하게, 눈에 띄지 않게 그림자 처럼, 상대가 무슨 도움을 주더라도 과하게 고맙다 하지않고, 이쪽에서 무언가를 해주었어도 최대한 눈치채지 못하게 하며 지내는것.

  
기독교에서의 '오른손이 하는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라는 가르침을..
불교에서의 '보리심의 철학' 을 일러 주듯한 구절..
아침을 묘사한 아침의 글 한구절.
이런것이 아침이다. 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아침을 잘 말해주는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기도 하지.
우울한 죽음을 이야기 하면서 희망의 메시지를 함께 품고 있는 이쁜 책.
마치 내마음을 대변해 주는듯한 섬세한 감정 묘사가 다정하게 다가왔다.